미국에 온지 어느덧 4년이 지나버린 지금,
여전히 대학문제로 이리저리 방황 중이다.
뭐 물론 다 내가 예전에 놀았던 만큼 무리가 따르는 거겠지만.
2010년 여름, 시카고를 떠나 로드아일랜드의 프로비덴스로
여름 학기를 들으러 왔다.
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하던 리즈디가 이곳에 있어서다.
이곳의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같이 공부하면서
나는 솔직히 구태여 이곳에 올 필요가 있을까 하는
또 다시 나태한 생각을 품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2006년 여름 이후로 나는 한번도 여름방학을
항상 무언가 바쁘게 쫓기며 보냈던 것 같다.
해서, 작년 2009년 여름, 나는 고등학교를 끝마치자마자
대학 한학기를 휴학하고 장장 9개월간 쉬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 또한 뜻대로 되지 않아 나는 장장 9개월간을
육체적 고통속에서 보냈다.
힘이 들다. 이룬 것도 없이 몸만 고생시킨 기분이다.
아마도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어 불안한 감이 있어서 일수도 있지만.
지금 또 다시 흔들리고 있다.
이번 편입이 나의 마지막 선택 기회다.
잘 선택해야 할 것이다.
이대로 순수미술을 택하느냐,
아니면 실용 또는 응용 미술을 택하느냐.
어찌됐든 여름은 지나가고 있고
어느새 계절학기도 다 끝났다.
페이퍼 써내느라 죽는 줄 알았다.
4월 달에 입대했다가 부대에서 복귀했던 시아도
어느새 다시 입대를 해버렸다.
한국시간 8월 2일에 말이다.
내 형제가 진심으로 늘 무사하고 기분 상하는 일 없기를 바란다.
여동생은 SAT 학원에 다니면서
어느덧 난 근처도 못 가봤던 2000점 커트라인을 넘어서려 한다.
자랑스런 내 동생.
오빠로서 뭐 하나 챙겨주지 못하는게 미안하다.
내년 2011년 1월, 조카가 생긴다.
2009년 12월에 결혼한 누나가 어느덧 임신을 했다.
분명 누나와 매형을 닮은 귀여운 아이일 것이다.
누님께서 늘 몸조심 건강조심하시길 바란다.
친구들이 한국에서 언제 오느냐고 묻는다.
대답할 수가 없다.
가봤자 볼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다.
보고싶은 이노므 손들.
건강들 하길 바란다.
2010년의 여름을 보내면서,
여전히 갈팡질팡 우왕좌왕,
며칠 전 아이들과 대화하면서 내가 22살이란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물론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마는,
내 스스로는 뉴질랜드에서 먹고 놀고 자던
행복한 16살 그때의 모습으로 멈춰있는 듯 했다.
근데 어느새 22살이라니.
난 내가 21살정도 되는 줄 알았다.
아, 모든게 너무 지체되었다.
뭐, 별 상관 없지. 다 내탓인걸.
온 세상이 평화롭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기도한다.
하긴 =-=;
그런데 뭐랄까, 이런 글을 읽는 체험은 내게 묘한 감동을 준다랄까. 웹에서 보는 피상적인 사람이 아닌, 사람을 보는 것 같어. 내 친구의 사람의 모습.
별생각없이 댓글 달았다가 오해살수 있는거 같아 지우긴 했는데, 한국와라 =_= 우선. 좀 나랑 다투자.